미스터 앤드 미시즈 김 3: 빤히 쳐다보기, 추파르 던지기, 뒤따르기, 몸 조롱

나는 남편에게 언제부터 스테어링이 나를 힘들게 하기 시작했는지 기억나는지 물었다. 나는 2009년
9월부터 한국에서 살기 시작했다. 첫 2년 동안은 스테어링이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지 않았다. 불편한
감정이 들 때가 있기는 했지만 나는 그들의 행동을 크게 나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냥 궁굼해서
그러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몇 가지 요소들이 더이상 스테어링을 참기 힘들게 만들었다. 가장 중요한
요소는 내 남편과의 관계로 부터 시작된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우리는 내가 학교에서 일한지
반년정도 되었을 때 만났다. 그는 우리 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했다. 우리는 서서히 친해졌고, 몇 달 후에는
데이트를 하는 사이가 되었다.

우리가 서로에 대해 조금씩 더 알아가고 서로의 삶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 남편은 나에게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행동과 해서는 안 되는 행동에 대해 알려주었습니다. 그는 내가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너무 너그럽고, 또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지나치게 비판적인 것에 대해 걱정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한국에
우리와 같은 백인여성과 한국남자 커플이 다른 다문화 커플에 비해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보는 것에 대해 크게 놀라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스테어링으로부터 크게 위협을 느끼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계 속에서 벌어지는 신기함들 속에서
굉장히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또 대화를 나누는 것 자체도 쉽지 않았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둘
다 상대방의 언어를 제대로 구사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습니다.)

관계에 익숙해지고 그것이 일상화되면서부터 우리는 사람들의 스테어링에 대해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몰해 훔쳐봤습니다. 보통 우리가 그들을 쳐다보면 그들은 고개를
돌렸습니다. 어떤 때는 웃기게도 다른 쪽을 쳐다보는 체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끊임없는 스테어링이
짜증나기는 했지만 그렇게 우리를 힘들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나이든 아저씨와 아줌마의 배려는 눈꼽만치도 없이 뻔뻔하게 우리를 쳐다봤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오고
가는 것을 구경하듯 쳐다봅니다. 그들 대부분은 내 몸을 위 아래로 훑어봅니다. 우리가 그들을 쳐다보아도
그들은 쳐다보는 것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불편해하는 것은 전혀 신경쓰지 않습니다. 나를 평가하는
것처럼 느껴지고, 심지어 두렵기도 합니다. 내 남편은 그러한 스테어링 멈추기 위해 멈춰 서서 공격적으로
그들을 쳐다보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가 그러한 행동을 처음 시작했을 때 나는 엄청나게 불안했습니다.
나는 미국 남부의 평범한 가정으로부터 왔습니다. 대립과 화는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배우고 자랐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런한 대립과 화를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습니다.

[got_back]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